리처드는 늘 산 미구엘을 마신다. 한 번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면 보통 4-5시간이다.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것도 아니고 혼자 바에 앉아 자기 집 책상 앞에 앉아 맥북 들여다 보며 홀짝홀짝 마신다. 편집팀에 의하면 마감 직전에 잔뜩 술에 취해 사무실에 출근해 한참 헤롱대며 의자에 누워 잠을 자다가 일어나 순식간에 기가 막힌 제목을 뽑아내고는 밤샘 마감 후 판본이 인쇄소로 넘어가면 모두 퇴근한 뒤에도 한참 맥북 앞에 앉아 있다가 맥주를 마시러 간다. 팀 대부분이 그와 이야기할 때는 그의 영어를 알아듣기 어렵다고 말한다. 디카는 그가 말을 '먹으면서' 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거의 못 알아듣겠다고 하고, 데브라는 그가 웅얼웅얼해서 역시 거의 못알아 듣는다고 했다. 데브라는 편집 중 그에게 확인할 것이 있어 전화 통화를 해야 할 때 그의 말을 알아 들으려 오케이 오케이 해가며 경청했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고 했다. 나도 맞장구치며 비슷한 '소통장애' 경험을 말했다. 그와 얘기할 땐 늘 pardon? sorry? what?이 내가 하는 말의 절반이라고 웃으며 과장해 말했다. 이 말을 듣던 데브라와 아만다는 즐거워 했다.
리처드는 뗌뽀에서 14년째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영국인이다. 고향이 어딘지, 언젠가 그가 산 미구엘 손에 들고 맥북 앞에 두고 스포츠 경기 중계 TV들이 벽벽에 걸린 스포츠맨 바에서 얘기해줬던 적이 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에겐 기회가 되면 발리에 초대해 휴가를 선물하고 싶은 누나와 어머니가 있다. 지난해 그러니까 2013년 5월엔 드디어 누나와 어머니를 함께 초대할 수 있는 돈이 모아졌다고, 그는 설레며 나에게 말했는데 끝내는 어떤 사정에서인지 계획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바나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맥북을 붙잡고 음악을 듣든 동영상을 보든 기사들을 읽든 좋아하는 축구팀의 경기일정과 결과를 보든. 몇 년 전 7-8년을 사귀던 인도네시아인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연애사도 심심한 것 같았다. 전'여친'은 스포츠맨 바에서 일하던 바텐더였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14년간 함께 주말마다 편집을 한 영어판 편집장 율리는 그를 자카르타에서는 잘란 작사 밖에 모르고 인도네시아어도 거의 하지 못하며 고향 영국에도 몇 년째 돌아가지 않으며 자카르타 밖이라고 가는 곳은 발리 뿐이라고 했다.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건강이 안좋다는 등, 그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 편집회의에서 여러번 말했다. 영어판 부편집장 헤르민은, 자주 편집 마감에 임박해도 전화가 불통이거나 행방을 알 수 없어져 팀을 패닉에 빠뜨리는 리처드를(그의 이름을 줄여 RB라고 부르는데) 이번주 마감의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다. RB만 제 시간에 출근하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한다. 편집 마감 일정이 당겨지거나 특집기사 양이 많아 편집팀에서 비상이 걸리면 헤르민은 늘 RB가 관건이라며 그와 주로 소통하는 편집비서 데위에게 그에게 잘 설명하고 꼭 제시간에 올 수 있게 하라고 당부 또 당부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회의석에 앉아 있으면 RB는 이 팀의 대단한 골칫거리, 영원한 과제, 구제불능의 속썩이는 존재가 된다.
그러면 왜 그런 그와 일하는가. 자카르타에 영어원어민들도 많은데. 언젠가 율리가 말했다. "제목을 리처드처럼 뽑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의 카피라이트가 늘 좋고, 결과물에 항상 만족한다." 이어 율리는 그가 어떻게 제목을 뽑는지, 표지문구와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고르는 최종 단계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창의적이고 재기넘치는 제목 뽑기의 밑감으로 읽고 들여다 보는 것들, 참고하는 것들에 대해서. 마감 때마다 그의 옆자리를 지키는 데위는 그가 주간지 기사들이나 시사와 전혀 관계없는 몇 개의 디자인 사이트, 영감있는 홈페이지 등에 자주 들어간다고 했다. 편집팀에서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의 관찰을 종합하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디어를 얻는 데 할애하며 아주 집중해 빠른 시간 안에 독자의 뇌를 깨우는 제목을 뽑아내는 카피라이터다.
그는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싼 무선 마우스를 쓰고 있는데 새것을 사다가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정향이 많이 들어가 단맛이 나는 유명한 토산담배 '구당가람'을 피운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발행되는 두 개의 영어일간 자카르타포스트와 자카르타글로브에 대해, 자카르타글로브는 에디토리얼 빼고 볼 게 없다고 잘라 말했고 자카르타포스트에 대해선 그저 괜찮은 신문이라고 두루뭉술 넘어갔다. 그가 매주 편집회의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그 주 발행호의 전체 편집방향과 레이아웃, 표지이야기와 표지의 문구/제목/디자인 등에 대해서는 정작 단 한 번도 논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에선 실리게 될 기사만 선별하고 발제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 (140115 JKT 아침)
뗌뽀 영어판 제1444호가 나온 이번주까지, 1444개의 놀라운 표지 제목을 뽑아오고 있으며 누구도 리처드 없는 뗌뽀 영어판을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그는 뗌뽀가 아직 잘란 프로클라마시 72에 있던 시절, 마감 한창인 편집팀 중간에 앉아 멀뚱거리던 자카르타 2주차 한국인 인턴기자에게 두꺼운 치즈만 넣은 호밀빵 샌드위치를 건넸었다.
Monday, January 06, 2014
위르요 아저씨
1년 2개월째 살고 있는 자카르타 남부 위자야 띠무르 집 관리인 위르요 아저씨는 부유함의 냄새를 맡으면 웃는다. 눈 앞에, 좋은 것 그러니까 돈으로 환산해 값이 나가는 것을 보면 만면의 미소와 함께 구하지 않은 친절을 행동으로 옮긴다. 돈 앞에 충성을 보이는 그런 물신의 전형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관리인이긴 한데, 도대체 뭘하고 월급을 받나 좀 의아할 때가 있다. 좋은 새 차 보고 '새차 샀냐'고, 새 자전거 보고 '자전거 샀냐'고 환하게 웃는 목소리로 묻던 사람이 정원 나무 잘라놓은 걸 보면 놀란다. 놀라울 건 아닌가.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청소를 한다. 물론 집안 쓰레기통 안과 밖에 쌓인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일이나 테이블, TV, 책 선반 등에 쌓인 먼지를 닦는 일은 거의 없지만. 새 입주자가 들어 올 방에 페인트 칠을 해야 한다거나 에어컨 청소를 해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제깍하는 것은 또 신기하다. 그렇게 쉬엄쉬엄 좀 놀다가 비오고 해 내리쬐고 다시 비오고 해 내리쬐는 날씨가 반복되는 통에 정원이 금방 정글이 되면, 가지가 자랄 만큼 자랄 때 까지 방치하다가 정원 나무를 인정사정 없이 잘라버리는데, 결과물은 '미는 뭐고 조경은 뭐냐' 하고, 잘라냈을 것 같은 모양이다. 그가 잘라버린 가지 많던 나무-키가 작지만 가지와 잎이 무성해서 내 방 침대쪽 창의 한낮 햇빛을 가리던 그 가지 많던 나무의 헐벗은 모습과 잘린 단면들을 보면, 목욕은 일년에 한 번 하는 구정물 흐르는 아이가 막 머리 밀고 목욕한 것처럼, 눈에 띄게 멋쩍다. 위르요 아저씨가 가지를 쳐낸 위자야 띠무르집 정원 나무가 만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라 치고 내 눈엔 그 나무 위로 말 풍선이 그려지는데 이런 거다. "헐..... 잘라도 이렇게 자르냐......"
지난 토요일 블록엠에 영화 <수까르노> 보러 다녀오는 길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로수 정비하는 중이었던지 길가에 잘린 가지들이수북했고 인부 아저씨들이 잘라낸 가지들을 이동의 편리와 부피줄이기를 위해 다시 낫같은 칼로 자를 때 풍기던 짙은 나뭇잎, 나무 냄새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은 좋은데 가지 잘라서 나는 짙은 나무냄새가 꼭 생각없는 사람이 휘두른 칼에 이유없이 죽은 사람의 피냄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Saturday, May 11, 2013
경고 - 위지 투쿨
Peringatan (경고)
-Wiji Thukul (위지 투쿨)*
만약에 권력자들이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이 자리를 뜬다면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아마도 그들은 희망을 잃어버린 것이리라.
만약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논의할 때
몰래 숨어 속삭인다면
권력자들은 주의를 기울이고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에 민중이 불만을 당당히 말하지 않는다면
사태는 이미 위험한 수준이다.
또한 권력자들이 하는 말이 거부될 수 없다면
진실은 위협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만약에 제안이 가차 없이 거절되고
목소리가 침묵 당하고, 비판이 이유 없이 금지되며
전복을 꾀하고 안정을 흔든다고 고발되다면
그러면 우리에겐 오직 하나의 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저항하라!
(1986년 중부 자바 솔로에서)
*위지 투쿨
1963년생.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등 교육 중단 후, 신문팔이 암표상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노동자가 되었으나 후일 시인, 음악가, 연극인으로 활동. 민중민주당(Partai Rakyat Demokrasi)의 일원으로 노동자 시위 조직을 돕고 참여하는 등 적극적 정치활동. 1995년 노동자 시위에서 진압대의 소총 개머리판에 가격 당해 한쪽 눈 실명(실명한 눈의 위지 투쿨 일러스트가 독살된 인권변호사 무니르 초상과 함께 국가폭력진상조사/과거사정리 요구하는 시민사회 상징 이미지로 널리 쓰임). 1998년 4월 시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실종. 97-98 많은 반정부 활동가들이 반수하르또 시위 중 정부군에 납치되었는데 투쿨 역시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 투쿨의 시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사회상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실종 이후 시위 현장에서 항상 읽혀지고 있다고.
-인도네시아 시사주간 Tempo(2013년 5월 13-17일), 위지 투쿨 특집
-<경고>는 그의 대표적 시
-아시아저널 2011년 겨울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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